역사에 비추어 본 해군의 발자취

해상왕 장보고 대사의 해양 개척 정신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호국정신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

 장보고는 신라인의 해상진출과 교역활동을 대표한 매우 흥미롭고도 경이로운 인물이다. 그는 중국의 산동반도 연해안과 대운하변 그리고 회수·양자강 하구 언저리와 동중국 해안에 이르는 지역에 산재해 있던 신라인 촌락을 하나의 체계로 조직화하고 자기의 통솔하에 두었다. 뿐만아니라 산동반도의 적산촌과 우리나라의 청해진 그리고 일본의 하까다에 그의 무역근거지를 두고 황해의 동중국해에 횡행하던 크고 작은 해상세력 집단을 철저히 통제하고 그의 세력권 아래에 두었다. 이로써 나·당·일의 삼국무역은 물론 서방세계와의 중계무역도 독점하여 명실공히 동아시아무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상업제국의 무역왕이 되었다.

 동과 서의 역사를 살펴보면 바다길이 열려 해상활동이 활발하던 나라는 번성하였고 그 반면에 그 길이 막혀 해상활동이 부진했던 나라는 쉬 멸망하였다. 3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장보고 이후 바다를 잊고 살아온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쉽게 짐작이 간다. 조선조 때에는 아예 해양경영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는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그 결과는 구한말 프랑스·미국·일본의 군함들이 수교와 통상을 요구하여 강화도·평양·부산·목포등지로 쳐들어 오기까지에 이르고 끝내는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제야 다시 우리나라는 세계 1위의 조선국으로, 그리고 손꼽히는 해운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겨레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해양상업제국'의 혼이 꿈틀거리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선인들의 빛나는 혼을 본받아 새 전기를 모색할 때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서해안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대를 맞추어 중국도 황해권 개발계획을 세워 동북아경제권의 형성이라는 큰 꿈을 구상하고 있다. 장보고시대에 못지 않는 해상국가로 발돋움할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는 우리는 장보고의 해양개척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이순신 제독에 대한 예찬은 수없이 많다. 정치, 외교, 경제 등 모든 방면에서 탁월한 공을 세웠으나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업적은 충무공이 백성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유교적인 봉건사회, 국토가 아닌 왕토사상이 근간을 이루고, 민(民)은 왕의 신민이라고 생각하던 당시에 충무공이 이땅의 주인을 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선각자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충이라는 것과 호국이라는 것이 나라와 이 땅에 살고 있는 백성 떄문이라고 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임란 전시기를 통하여 이순신은 유성룡이라는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그를 알아주는 이 없었고 왕부터 모든 관리들에게까지 외면을 당하고 모함을 받아도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대로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켜야 할 대상은 이 나라였고, 이 땅에 살고 있는 백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충무공 이순신의 정신 가운데 자주, 자조정신은 해전 승리의 큰 요인 중의 하나였다. 충무공이 지휘관으로 있던 시절 그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마치 황무지를 개간하듯 자신이 군인을 불러모았고, 자신의 지혜와 노력으로 군량과 군복과 무기를 만들었다. 이처럼 충무공은 주어진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것을 탓하지 않고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 냈으니 이러한 자주, 자조정신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국가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발휘되어야 될 국난극복정신의 귀감으로 삼아야 할 일들이다.

 오늘날 우리는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인물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다. 인물이 없음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충무공 정신을 일깨우고 배우는 작업이 필요할 때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겨울이 되어야 그 푸르름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이시대가 요구하는 충무공의 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할 때다.

 

 인간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환견으로부터 많은 고난과 시련에 직면하게 되며 이러한 고난과 시련에 굴복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것들을 극복하고 개척하기도 한다. 우리가 위인으로 추앙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뚜렷한 목표의식 속에서 어떠한 고난과 시련도 극복하려는 진취적인 기상을 가지고 삶을 영위했던 사람들이며 그들이 역경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에서 보여준 삶의 행적은 후세에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우리가 고 손원일 제독을 해군의 아버지로 추앙하고 있는 것은 그분께서 해군의 창설자로서 해군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셨기 대문이기도 하지만 해방 직후 해군창설 과정에서 보여주신 투철한 애국심과 조국해양수호정신에 더욱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충무공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나라는 위난의 시기에 제해권을 장악하여 국익을 보장하고 국가를 지켜왔으나 일제 식민 통치 하에서 우리 민족의 해양사상과 해양에 관한 지식은 극도로 축소되었고 해방 직후 3면을 둘러싼 우리 해양을 수호할 능력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1945년 8월 21일 아직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손 제독은 조국 해양수호를 위한 해군건설의 원대한 뜻을 품고 '해양과 국토를 지킬 뜻있는 동지를 구한다.'는 벽보를 붙이고 그해 11월 11일 대한민국 해군의 모체인 해방 병단을 결성함으로써 3군중 가장 먼저 국군 건설의 거보를 내딛었다.

해방 직후의 많은 어려움과 불비한 여건 속에서도 희생정신과 투철한 애국심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해군을 건설하신 손제독의 숭고하신 정신은 후배 해군들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생전에 이룩하신 위엄은 우리 해군사에는 물론 민족사에 기록되어 찬연히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