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기 졸업 후기*

지배자가 아니라 지도자가 되거라

모교로 부임하는 날, 추풍령을 넘으면서 참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태어나 이렇게 울어보기도 처음인 듯 합니다.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서편제'. 그 주인공 송화가 바로 나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송화는 근대화 시대가 문을 열 무렵, 어려서부터 의붓아버지 유봉에게 소리를 배웁니다. 진짜 명창이 되기 위해 열심히 합니다. 유봉은 이런 송화에게 정성을 들이고, 보약도 먹입니다. 그러나 유봉이 주는 보약이 무엇인지 모르는 송화는 마침내 눈이 멀게 되고, 소리 밖에 모르는 존재가 됩니다. 얼마 후 유봉이 죽자 송화는 벽지 술집 등으로 전전합니다. 젊어서 집을 나간 동생 동호가 그곳을 찾지만 송화는 모른 채 소리만 들려줍니다.

오늘 부임하는 이 길은 꼭 23년전 내가 해군사관학교를 찾아오던 그 길입니다. 그동안 나는 해군에서 주는 보약을 잘 챙겨 먹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 다루는 기술엔 도통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해야 될 일이고, 천직이며, 운명이라는 것을 절감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사관생도들에게 바로 이 보약을 나누어 주는 자로 선발되어 가고 있습니다.

얼마전 처음 수업을 하였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설레입니다. 이 느낌은 아마 재직기간 2년 내내 그럴 것 같습니다. 그 첫 수업에서 나는 '이제부터 지식의 전달에 앞서 생도들에게 파워온부터 해야겠구나!'하고 느꼈습니다. 자리에 앉는 순간 파워를 꺼 놓으면 아무리 훌륭한 강의안이 무슨 소용입니까? 파워꺼진 컴퓨터 자판기를 밤새 두들겨 보았자 한 글자도 입력되지 않습니다. 이건 제가 17년 동안 실무에서 깨달은 것입니다.

제 54기 졸업생, 그리고 재학생 여러분!

여러분을 지켜줄 해약은 바로 정직, 성실, 책임입니다. 모교의 교훈과도 같습니다. 이것을 몸에 지녀야 여러분의 눈이 멀지 않습니다. 실무에 나가면 눈은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촌놈이 처음 서울에 가면 그렇듯이.

그리고 또 하나의 모약은 '자아발견'입니다. 저는 1958년에 태어나 1998년에야 겨우 자아를 발견하였습니다. 40년간의 리허설 끝에 인생무대의 입장권을 받아 든 셈입니다. 이제서야 세상이 달라져 보이고, 환해지고, 희망이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밝은 해군의 미래도 보이고, 하늘의 뜻도 알 듯 합니다.

여러분! 제발 지배자가 아니라 지도자가 되십시오. 혹시 재학기간 동안 여러분은 자신이 지배자 수련을 받지나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와 민족과 인류를 위하는 훌륭한 지도자가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부모님, 친구들과 여러분을 위해 4년간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분들의 바램입니다. 절대 눈이 멀지 않기를 바랍니다.

구미고속도로 현풍을 지날 즈음에 느닷없이 유봉의 숨 넘어가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내가 니 눈을 그렇게 만들었다. 알고 있었제?... 그럼 용서도 했냐? 송화야! 이제부터 한을 넘어가는 소리를 해라! 한을 넘어서면 동편제도 서편제도 없고 득음의 경지만 있을 뿐이다."

전산학교수  중령 한경섭
 


 시작 그리고 희망

우선 4개 성상 동안의 생도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영광스러운 졸업과 임관을 하게 되는 54기 신임 소위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합니다. 지난 1년여간 여러분을 담당한 훈육관으로서 순항훈련은 물론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때론 싫은 소리도 하고, 때론 같이 웃어가며 함께 생활한 그 시간이 나에게는 커다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웃음과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인간! 나는 여러분을 훈육하는 몇 개월 안 되는 시간 동안 그에 대해 매우 좋은 점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54기 한 명 한 명 너무나 사랑스럽고 정이 갑니다. 비록 모자라고 부족해 보일 때는 화가 나고 호통도 치지만 언제나 나를 믿고 따라 주는 여러분의 순수한 모습들이 어쩌면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뿌듯하게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제 곧 ' 청년장교'라는 꼬리표가 붙을 것입니다. 공을 세워 이름을 날리는 장군·제독도 과거에는 '청년장교'로 불리는 추억의 젊은 나날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는 하찮은 성공에 우쭐거리기도 하며, 조그만 실패에도 좌절감을 맛보겠지만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면서 점차 유능한 현장 지휘관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청년장교시절에 어떠한 마음가짐과 자세로 생활하느냐는 군 생활의 성공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더 이상 여러분을 훈육했던 훈육관이 아닌 여러분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선배들 중 한 사람의 글이라 생각하고, 여러분이 해군 청년장교의 생활을 하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먼저, 해군을 이해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바다 개척의 시대가 막을 올린 초창기부터 해군은 자연을 경외하는 한편 인간의 무기력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튼튼한 배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바다에서는 태풍의 위력을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해군의 특성을 이해하고 예전부터 바다를 상대한 선배들의 경험을 존중하고 해군을 사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음은 '게으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곧 임관을 하게 되는 여러분은 해군에 관한 많은 것을 배워야 하며 왕성한 책임감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장교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맡은 책임을 다하는 것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끝으로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이 눈앞에 있거든 망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이 분명하면 확고한 의지로 기꺼이 그 길을 가길 바랍니다. 도중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주위에 있는 훌륭한 조언자를 찾아 상의하십시오. 물론 청년 장교라면 아우렐리우스가 말했던 것처럼 망설임 없이 정의의 길을 향해 나아 갈 수 있는 용기도 지녀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여러분은 남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고, 타인을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를 성찰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며, 그리고 먼저 내 마음에 자라는 불의의 씨앗을 소멸시켜 나아가길 바랍니다. 훈육관은 여러분들이 어떠한 것에도 얽매임 없이 스스로 마음속에 키워왔던 신념 속에서 생활할 것을 원합니다.

다시 한번 새 천년 첫 임관의 영예를 안은 제 54기 신임소위 여러분의 새로운 시작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더라도 행복한 웃음을 잃지 않는 여러분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54기 파이팅!

6중대훈육관 소령 심승섭
 


어머니의 품을 떠나며... 해군 소위 김관수

2000년 3월 16일, 오후 2시. 우리 해사 54기는 정예 해군 장교 양성의 요람을 떠나갑니다. 4년 1520여일 동안이나 저희들의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것 등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나하나 세심히 챙겨주었던 모교를 떠나 원대한 꿈을 안고 거친 바다로 떠나갑니다. 4년 전 이곳 옥포만에 위치한 해군사관학교에 왔을 때, 막연히 멋진 해군사관생도만을 생각하고 들어왔지만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에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선배들의 수많은 지도와 훈련, 지적 등등이 나를 비롯한 우리 54기 생도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주었습니다. "내가 이런 모습을 하기 위해서 이곳에 들어왔는가!"라고 항상 푸른 옥포만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가입교 훈련을 통해서 군인으로서의 신분 전환, 1학년 해병 실습을 통해서 강인한 군인 정신 함양, 2학년 부대 실습 및 함정 실습을 통해서 진해에 위치한 각 부대의 현황과 우리 대한 민국의 최신예 함정들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행군을 통해서 야전 생활과 생존 본능을 경험하였습니다. 3학년 연안 실습은 각 지역 부대를 방문하여 한국 해군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4학년 때는 생도 실습의 하이라이트인 순항 훈련을 통해서 4년간 배우고 익혔던 지식을 총망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실습을 통해서 우리의 능력을 연마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4년간 생활하면서, 저희들도 모르게 해군장교로서의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저학년 때 생각하던 괴리감은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아마도 저의 동생들 55기에서부터 58기 후배 동생 생도들도 생도 생활 중 많은 회의를 느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배 동생 생도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는 자신의 생각 여하에 따라서 삶의 원동력이 될 수도, 회의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후배 시절에는 조금은 타율에 의해 자신의 생활에 지배되어 어렵겠지만 작은 공간이나마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나에게 닥쳐오는 모든 고통과 시련들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생활한다면 한없이 재미있을 것입니다. 자금 지난 1학년 1학기 때 생각이 납니다. 생도 연대에 올라와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생활 속에서 거의 매일 선배 형들은 저희들을 좋아했는지 집합과 지도의 연석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체력 단련한다."라고 생각을 하니, 선배 생도들의 지도가 흥에 겨웠습니다. 생각을 바꾸니까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3학년, 4학년이 되었을 때는. 후배 때, 육체적인 힘겨움이 아닌 정신적인 힘겨움 때문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나의 진로에 대해서 생각을 하니 지금까지 해놓은 것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때까지도 저희들은 어렸기 때문에 또 4년을 다 익히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젠 졸업을 하면서 각자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모교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4년이라는 생각해보면 짧은 시기였지만 인생의 큰 전환점으로서 중요한 시기에 어머니의 정성어린 보살핌 덕분에 저희들이 이게 장성할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키워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또한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어머니 저희 54기생은 새 천년 신임 소위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4년간의 결실인 졸업반지를 보며 스스로 노력한 만큼 얻으며, 그 가운데서 세상 누구보다 풍족한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해봅니다. 비록 저희는 졸업을 하며 어머니 품을 떠나가지만 다시 어머니를 찾을 때는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졸업을 맞이하면서... .

해병대 소위 강대우

어릴적부터 꿈꿔왔던 군인의 길.

'빨간 명찰','팔각모','세무워카'하면 떠오르는 해병대, 그 해병대 장교가 되기위해 이곳 옥포만에 들어와서 생활한지 어느덧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영광스러운 졸업 및 임관식을 맞이하게 되었다.

길게만 느껴지던 4년이라는 시간이 지금에서는 왜이리 짭게만 생각되어질까? 무언가를 성취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일까? 아니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일까? 시간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절로 실감이 난다. 사관학교 4년 이시간동안 나는 진정무엇을 배우고 느꼈는가? 망해봉위에 떠있는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이 시점에서 생도생활을 먼저한 선배로서 아련하게 떠오르는 기쁨과 아쉬움의 감정이 교차했던 지난 생도생활을

돌이켜 보면서 내가 느껴왔던 몇가지 사항을 적어봄으로써 후배생도들에게는 도움을 나자신에게는 이제 더이상

생도가아닌 국가에 충성하고 해병대에 목숨바칠 늠름한 해병대장교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해 볼까 한다.

먼저 생도생활을 하면서 나의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던 글귀가 있다.

"젊다는 건 실패했을 지라도 성공할수 있는 내일이 있기에 더 아름답다."

부푼가슴을 안고 이곳 사관학교에 들어와서 모든 것들이 낯설고 생소하게 느껴지던 가입교때부터 졸업 및 임관식을 불과 며칠앞둔 지금까지 내가 흘리고 경험해야 했던 눈물과 땀 그리고 고난과 역경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줌으로써 지금의 나 자신을 있게끔 생도생활의 어려운시기 시기마다 나의 머리속에 떠올랐던 말이다. 젊고 패기차고 당당한 초인의 대명사인 청년사관생도로서 고난의 길이자 희생의 길이기도 한 군인의 길에 이제막 들어선 초급장교이기에 더욱더 의미있는 말로 다가온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하지만 남보다 좀더 일찍 현실을 직시하고 깨닫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고난과 시련도 두렵지 않을 것이며 희망찬 내일이 있는게 아닐까?

두 번째로 모든생활을 하면서도 중요하지만 꽉 짜여져있고 각박해지기쉬운 생도생활의 과업속에서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이고 여유로운 생활을 할수 있는 자기 자신을 만들기위해 자신을 바로보고 알라는 것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또한 생도생활을 하면서 시련과 고난속에서 나자신을 뒤돌아보며 많은 수련을 했건만 부족한 것이 아직 많기에 더욱더 강조해서 말하고 싶다.

다른 집단과는 달리 규제와 속박을 특징으로하고 있는 사관학교생활속에서 분위기에 휩쓸려 나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고 이끌려가는 경우가 있다.공동체가 제시하는 목표에 무작정 끌려가기보다는 자신의 뚜렷한 주관을 바탕으로 마음의 안정을 유지한채 사관학교가 추구하는 진정한 지,덕,체를 쌓아가는 것이 자신을 위하고 또한 지금의 나자신이 있게끔 만들어준 국가를 위하는 길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해사인 다운 정신무장을 말하고 싶다.

"해사 그대의 자랑이듯 그대 해사의 자랑이어라."해사인 이라면 누구나 들어본 말이다. 해사인 이라는 것. 해사인이 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많은 않은 과정이었기에 더욱더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는 말일 것이다. 그러한 과정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는가?그것은 바로 해사인만의 정신 즉, 적은 인원이지만 어려우면 어려울수록서로 하나로 뭉쳐져 큰힘을 발휘하는 단결정신,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인내할 수 있는 인내정신,싸우면 물러서지않고 당당히 맞서 싸우는 임전무퇴정신이 생도생활을 통해 길러졌기 때문일 것이다.그러한 해사인만의 정신이 있었기에 다시부활된 삼사체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수 있지 않았나 싶다.이러한 해사정신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내려와서'해사인"이란 이름 석자 앞에 하나가 되길 바란다.

이렇게 몇가지 사항을 적어보았다. 사관학교의 생활은 이것들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고 사관학교를 둘러보니 모든 것들이 정들어 보인다. 옥포만,망해봉,단성로,보성로... .

아련한 추억들과 아쉬움을뒤로한채 이 정든 학교를 떠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끝으로 나 진정 사관학교를 사랑했노라고 그리고 후배들 역시 사랑 했노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나 이제 수많은 해사인들이 그래듯이 4년간의 생활을 마감하고 나또한 조국과 겨레와 바다에 그리고 해병대에 이 한몸 바칠 것을 다짐하며 글을 맺을까 한다.

해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