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
해사의 전통과 교훈의 의미
철학교수 중령 임원빈

 본교가 1946년 1월 17일 해군병학교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언 54년이 되었다. 새 천년 원년을 맞이하여 58기가 신입생으로 입교하여 사관생도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며칠 전에 치른 졸업식에서는 해사 54기가 소위로 임관하여 해군 장교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본교를 졸업한 해사인은 우리만의 독특한 전통과 문화를 통해 공감대와 동질성을 유지시켜 왔다. 해사인의 영원한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는 이 곳 옥포만은 2기생부터 살기 시작했으니 2기생부터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선배들과 이제 막 사관생도 생활을 시작한 58기 신입생은 적어도 이 곳 옥포만이라는 공간과 시설에 대해서는 동질성을 느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한 마디로 60 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대화가 된다는 것이다. 가입교 특별 훈련의 전통으로 대물림되어 내려오는 옥포탕, 천자봉 구보 및 행군 등의 교육프로그램은 또한 해사인을 해사인 되게 해주는 중요한 의식이요 체험이다. 아울러 그러한 훈련과정 중에 경험했던 무한한 식욕과의 싸움 그리고 결코 잊을 수 없는 빵이나 통닭의 맛은 평생동안 우리 해사인들의 인구에 회자되는 즐거운 추억들이다. 이 또한 해사인들의 동질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것들이 유사한 공간 경험 또는 교육 과정의 체험을 통해 해사인을 하나 되게 하는 유형적 전통 요소라면 '진리를 구하자', '허위를 버리자', '희생하자'라는 본교의 교훈은 해사인들의 삶의 가치와 목표를 제시해 주는 공동의 이념으로써 이 또한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무형적 전통의 핵심 요소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교훈이 시대에 뒤떨어진다거나 부정적인 인상을 가진다는 이유로 그것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에 종종 접하게 된다. 아래에서는 새 천년의 원년을 맞이하여 우리 교훈의 참된 의미로 밝혀 보고 아울러 교훈이 지향했던 이상적인 해사인상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1947년 2대 고장인 김일병님을 중심으로 제정된 우리의 교훈은 다음의 몇 가지로 그 의미를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진리를 구하자'는 진(眞)을, '허위를 버리자'는 선(善)을, '희생하자'는 미(美)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인간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최고 가치인 진, 선, 미를 추구하자는 것이 교훈의 근본 취지라는 것이다. 둘째, '진리를 구하자'는 진리를, '허위를 버리자'는 정의를, '희생하자'는 사랑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진리, 정의, 사랑이 교훈의 지향하는 정신이라는 것이다. 셋째, '진리를 구하자'는 인생관 정립을, '허위를 버리자'는 세계관 정립을, '희생하자'는 충무공 정신을 계승한 사생관 정립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진리를 구하는 인생관, 정의를 추구하는 세계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생관을 교훈은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교훈의 첫 번째 항목인 '진리를 구하자'는 아무런 문제의 소지가 없다. 본교는 비록 해군 장교 양성이라는 특수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여느 대학처럼 진리를 추구하는 상아탑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관계없이 결코 바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은 항상 두 번째 항목인 '허위를 버리자'에 집중된다. 이 항목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허위가 가득 찬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 자칫 사관생도들에게 처음부터 사람을 의심하는 부정적 시각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심(덕성)을 기르자' 또는 '양심(덕성)을 보존하자'는 등의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있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교훈의 두 번째 항목의 특성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선한 본성을 기르고, 보존하자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선한 본성을 기르고 보존하는 것을 방해하는 거짓이나 위선을 적발해 내어 전면전을 선포한다는 데 있다. 해사인 모두는 거짓과 위선이야말로 도덕성을 훼손시키는 주범임을 철저히 인식하여 '허위를 버리고' 정직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 해군 장교로서의 명예와 긍지를 지키자는 것이다. 이처럼 인생의 가치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교훈의 정신은 마지막 항목인 '희생하자'에도 똑같이 관통해 있다. 희생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모든 사랑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무한한 욕구의 극복, 포기, 양보 이른바 '희생'없이는 실천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인(仁 : 사랑)을 '극기복례(克己復禮 : 무한한 이기욕구를 극복하고 공존공영의 원리를 실천하는 것)'라고 설명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사랑하자'라고 하지 않고 '희생하자'라고 한 것은 사랑의 구체적인 방법까지를 제시해 줌으로써 실천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진리를 구하여 올바른 인생관을 정립하고,l 거짓이나 위선과의 싸움을 통해 길러 낸 도덕적 역량은 결국 자기 희생이라는 적극적인 실천 행위를 통해 완성된다는 것이 교훈에 관통하는 일관된 정신이다. 이렇게 볼 때 희생은 인간적 삶의 극치요, 영장적 삶의 완성이요, 삶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인 것이다. 이 때문에 '희생하자'는 진, 선, 미에서의 미적 가치와 연결되는 것이다. 인간적 삶의 모습 가운데 국가와 민족을 위한 희생보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평소 진리를 추구하여 올바른 인생관을 정립하고, 허위와의 전면전을 통해 정직성을 지켜 내어 언제, 어디서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내 한 몸 희생하 수 잇는 사람이야말로 우리 교훈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해사인상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교훈의 훈도 하에 54년의 전통을 유지해 오면서 해사11기생 고 이인호 소령을 배출하였다. 고 이인호 소령은 교훈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희생하자'를 몸을 던져 실천한 해사인의 표상이요 귀감이다. 이처럼 본교의 교훈은 해사의 역사와 더불어 호흡을 함께 하면서 해사인의 삶의 방향은 인도하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였다. 1기생부터 58기생까지 우리 해사인 은 '진리를 구하자', '허위를 버리자', '희생하자'라는 이념적 공유를 통해 동문으로서의 동질성을 확인하여 왔으며 새 천년 새 세기에도 교훈의 이와 같은 역할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전에 교문 앞 해안도로의 프라타나스가 베어진 것을 보며 가슴 아파했던 기억이 있다. 보텀 시절 교문을 오가던 구보 훈련시간에 선배들이 들려주던 "저 잎이 두 손바닥을 펴놓은 것처럼 커지면 여름 휴가를 간다."는 말의 의미를 57기 이하 후배들과는 더 이상 공유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학교 시설과 주변 환경은 바뀔 수 있다. 또한 미래의 어느 때에는 우리 학교 자체가 이 곳 옥포만을 떠날 수도 있다. 그 때가 되면 우리와 후배 해사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유형적 전통 영역은 점차 축소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해사인으로 맺어 주는 무형의 전통 요소가 있다. '진리를 구하자!', '허위를 버리자!', '희생하자!'라는 교훈이 해사인의 삶의 가치와 목표를 제시해 주는 공동의 이념으로 자리하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