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사관학교 교환교수 근무를 마치고

 

홍우영 중령

UNIVERSITY OF MINNESOTA 공학박사

전자공학과 부교수, 평가관리실 입시홍보과장

WYHONG@NAVY.AC.KR

 

 미국 MARYLAND주 주도 ANNAPOLIS시에 위치해 있는 미 해군사관학교 전기?전자공학과에서 교환교수로서 1997년 12월부터 약 2년간의 파견 근무는 미국 해군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어느 나라가 세계최강의 해군력을 가지고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을 언급할 것이다. 개인의 능력도 교육에 따라 좌우 되듯, 미국의 막강한 해군력의 기본은 교육 우선 주의에 바탕을 두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미국 해군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중 하나가 경기 호황과 더불어 군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고, 군 지원율이 감소됨에 따른 인력수급의 문제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보수와 근무 여건이 좋은 일반 기업체 지원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국가적 분위기 속에서 해군 장교를 배출하는 4년제 교육기관으로 미 해사는 상황이 달랐다. 약 1,200명의 생도에게 입학 허가서를 주는데 매년 10,000여명의 학생들이 지원하고 있고 지원 학생의 수준에도 큰 변화가 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는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한 학교의 지명도에서도 뒤지지 않을뿐더러 일반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반학 및 전공 교육, 군에서 요구하는 군사학 교육 등을 포함한 모든 제반 교육 체계가 일반 대학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 해사 도착 후 부임 신고시 만났던 민간인 학장(academic dean)과의 대화에서 미 해군사관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의 목표를 명확하게 이해하였다. 지,덕,체를 겸비한 장교양성에 추가해서, nrotc,ocs출신장교들과 경쟁시 우위를 갖출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비록 임관하는 해군소위중 1/4밖에 되지 않는 미 해사 출신이지만, 제독의 60%는 미 해사 출신이라는 설명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입학 학생의 경우 고등학교 성적이 상위 1/5안에 드는 학생이 전체의 80%이고, 90% 정도는 고등학교 교내 스포츠 클럽 활동을 하였던 학생들이었다. 특이사항으로 우리나라 생도 3명을 포함하여 총 21개국으로부터 32명의 생도가 미 해사에서 교육을 받고 있으며 졸업2 후 각자의 나라로 귀국하여 해군 장교로 근무예정이나, 해군이 없이 코스타리카(costa rica)의 경우 졸업 후 공무원으로 근무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미 해사에서 인상적으로 느낀 것 중 하나는 자율성 함양 교육이었다. 먼저 생도들의 보급제도에서 자율성 교육이 잘 나타나 있다. 신입생들이 학교에 가입교 하는 첫 날 제반 물품을 보급 받고, 정식 입교식 후 동일 기종의 컴퓨터가 보급되어 진다. 이 모든 보급품들은 학년별 일정 월 급여(1학년의 경우 $600이고 학년별로 증가하여 4학년은 $900)에서 공제 되어지고, 이것이 단체로 일괄 구매되어 보급되는 마지막 물품이다. 이 후에는 생도에게 주어진 급여 한도 내에서 피복, 교보재등 생도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본인 스스로 구입하여햐 하는 바, 모든 생도가 절약하고 규모에 맞는 경제활동을 배우고 있었다. 선배가 사용하였던 가격이 싼 중고 교재를 구입하여 사용하고, 중고 근무복을 구입하여 입은 생도들을 흔히 볼 수가 있다. GO NAVY, BAET ARMY !미 해사 1학년 생도가 1년 내내 사용하는 구호로서 미 해사의 교정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호이다. 1845년 개교하여 1889년부터 시작된 미 해사와 육사의 미식 축구경기는 동문, 예비역, 일반 시민등 많은 사람들의 관심하에 해사와 육사의 중간에 위치한 Pennsylvania 주 Philadelphia에서 매년 12월 첫 주 토요일에 개최되는데, 모든 생도는 이 경기에 의무적으로 참석하여 응원하도록 되어있다. 특이한 사항은 Annapolis시에서 차로 약 3시간 걸리는 경기장으로의 교통 이동 및 경기장 입장료 모두 생도 각자의 개인 부담으로 급여에서 공제가 되고 있었다. 이와 같이 급여를 통하여 생도 스스로 효과적인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것도 생도생활의 일부였다. 자율성에 바탕을 둔 또 다른 것들은 생도 개인이 선택한 과목의 기말고사 계획에 따라 휴가를 실시하는 날짜가 서로 다르고, 각자가 선택한 특별 활동 및 체육활동에 따라 석식시간이 다르고, 스스로 시간을 분배해서 하루를 규모있게 사용하는 것도 생도가 해야 될 사항이었다. 매일매일 계속 되는 숙제와 시험으로 거의 모든 생도들이 밤 2시이후에나 취침이 가능하고, 새벽 6시 30분에 기상을 하도록 되어있어서 도서관 및 강의실 주변 소파에서 잠시 졸고 있는 생도들을 쉽게 볼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 해사생도들도 학과 과제 및 시험준비, TOEIC준비등 해야할 많은 것이 있으나 필자가 느끼는 생도 개인의 부담은 미 해사 생도에 비해 훨씬 못 미친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우리 해사 생도들이여! 누가 선진 해군을 만들어야 하는가? 누가 선진 해사를 만들어야하는가? 내가 남보다 더 노력하는 그 길밖에 없지 않는가? 미 해사에서 한국 군복을 입고 생활했던 2년은 나 혼자 느끼기에 너무 아쉬웠던 경험이었다. 미 해사의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들, 여러 모임에서 자주 만났던 미 해군 장교들과 함께 나누었던 우정은 한미 유대 강화 및 군사협력에 작은 기여를 했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글을 맺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