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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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丈夫生世 用則效死以忠 不用則 耕野足矣

대장부 세상에 나서 쓰이면 죽을 힘을 다하여 충성할 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농사짓고 살면 또한 족한 것이다.

(벼슬길에 갓 나왔을 때 자신의 포부를 밝히며)
以爲遮海寇 莫如舟師 水陸之戰 不可偏廢

바다로 침입하는 왜적을 막는 데는 수군을 따를 만한 것이 없습니다. 수군이나 육군 중 어느 쪽도 없앨 수 없습니다.

(임진왜란 발발 1년 전(1591년 7월) 조정에서 왜적은 수전에 능하고 육전에 약할 것이므로 수군을 없애고 육전에만 전력을 기울이자는 의견에 대하여)
勿令妄動 靜重如山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

(첫해전인 옥포해전을 시작하기 전(1592년 5월 7일), 부하 장병들의 동요를 방지하기 위해)
若無湖南 是無國家

만약 호남이 없으면 그대로 나라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충무공이 한산도로 진을 옮긴 다음 날인 1593년 7월 16일에 친구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 중, 전라도의 중요성 강조와 한산도에 전진기지를 설치한 목적을 밝힌 것임)
三尺誓天 山河動色 / 一揮掃蕩 血染山河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강산이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충무공이 지녔던 환도(장검)에 새겨진 글로서 칼 두 자루 중 한 자루에는 ‘三尺誓天 山河動色’이, 다른 한 자루에는 ‘ 一揮掃蕩 血染山河 ’가 쓰여 있다. 엄정한 군기 시행을 의미하며 충무공은 이 칼들을 벽에 걸어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今臣戰船尙有十二 出死力拒戰 則猶可爲也

저에게는 아직 전선 12척이 있습니다. 죽을 힘을 내어 항거해 싸우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조선수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패한 후 충무공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직에 복직시켰지만 수군의 힘이 너무 미약하므로 조정에서 수군을 폐하고 육전에 종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때 충무공은 위와 같이 말하여 수군의 폐지를 막았음(1597년 8월 15일자 장계에 언급하였다고 함))
必死則生 必生則死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불과 13척의 전선으로 왜적선 수백 척을 맞아 명량해전을 벌이기 전날인 1597년 9월 15일에 부하들의 공포심을 없애고 전투의지를 독려하기 위해 오자병법상의 구절(必死則生 幸生則死)의 문구를 인용한 말)
此讐若除 死卽無憾

이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충무공이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을 앞둔 1598년 11월 18일 밤, 앞으로 전개될 해전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왜적선을 쳐부수겠다는 맹세)
戰方急 愼勿言我死

지금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노량해전이 한창이던 1598년 11월 19일 동틀 무렵, 적이 쏜 탄환에 맞은 후 유언으로 남긴 말)
益勵舟楫 海口待變

배들을 더 한층 정비하여 바다 어귀에서 사변에 대비하라.

(충무공이 제1차 출전을 마치고 본영에 귀환한 후 휘하 장수들에게 당부한 말씀)
瞭察賊船 登時馳告

멀리 적선을 살피고 즉시 보고하라.

(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시절 중 1594년 3월에 있었던 제2차 당항포해전을 치르기 직전에 적의 정세를 살피고 보고하라는 지시. 이 결과 적선의 행동을 파악할 수 있어서 적을 효율적으로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명시

閑山島夜吟(한산도야음)

水國秋光暮 / 驚寒雁陣高 / 憂心輾轉夜 / 殘月照弓刀

한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 찬 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드는 밤 / 새벽 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

(충무공이 1595년 가을에 나라를 근심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표시하여 지은 시. 이 시는 중국 당나라 시인 盧綸의 和張僕射詩(기러기 그믐밤을 높이 날으매/선우가 한 밤에 도망치나봐/날랜 군사 풀어내어 잡고 싶건만/찬눈이 궁도산에 가득 쌓였네)를 인용하여 위 시를 지은 것으로 사료된다. 즉 옛날의 흉노와 이때의 왜적을 비유하면서 왜적을 군사를 내어 치고 싶건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칠 수 없는 상황을 탄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는 동서고금의 많은 영웅시 중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이면서도 그의 나라를 근심하던 안타까운 심정을 가장 절실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閑山島歌(한산도가)

閑山島月明夜 上戍樓 / 撫大刀 深愁時 / 何處一聲羌笛 更添愁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 큰 칼 어루만지며 깊은 시름 하는적에 /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끓게 하나니

(충무공의 대표시로 널리 알려진 것이다. 충무공이 이 시를 언제 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난중일기를 볼 때 갑오년(1594) 6월 11일과 을미년(1595) 8월 15일의 기록이 이 시의 분위기와 부합되는 것 같다. 갑오년 일기에는 ‘충청수사가 와서...달 아래 앉아 얘기할 적에 옥피리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오다.’라는 기록이 있고, 을미년 일기에는 ‘이날 밤 희미한 달빛이 수루를 비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시를 읊었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
贈別宣水使居怡(선수사 거이와 작별하며)

北去同勤苦 / 南來共死生 / 一杯今夜月 / 明日別離情

북쪽에 갔을 때도 같이 일하고 / 남쪽에 와 사생결단 같이 하였소/ 오늘 밤 이 달 아래 잔을 들고는 / 내일이면 우리 서로 나뉘겠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