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과 무기/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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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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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은 전선과 무기를 이용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전술을 구사하였을까?
먼저 수군 지휘관이 갖고 있던 해전의 특징과 수행 방법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수군 전술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할 수 있다.
다음의 기록을 참고할 수 있다.

해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많은 군졸이 죄다 배안에 있으므로 적선을 바라보고 비록 도망해 달아나려 해도 그들의 형편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노를 재촉하는 북소리가 급하게 울릴 때 명령을 위반하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군법이 뒤를 따르는데 어찌 마음을 다하지 아니할 것이며 귀선이 먼저 돌진하고 판옥선이 뒤따라 진격하여 연이어 지자 현자총통을 쏘고 따라서 포환과 시석을 빗발치듯 우박 퍼붓듯 하면 적의 사기가 쉽게 꺾이어 물에 빠져 죽기에 바쁘니 이것은 해전의 쉬운 점입니다.

이것은 당시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조정에 올린 장계에 있는 내용인데 이를 통해 당시 조선 수군의 전술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위의 자료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해전은 육전과 다르게 조직 구성원들이 모두 힘을 합쳐 전투에 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해전은 육지에서와 다르게 유사시 개별적인 후퇴가 불가능한 운명공동체라는 특징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해전이 쉬운 점을 제시하고 있다. 귀선이 먼저 선봉에서 적의 기선을 제압하고 이어서 주력군선인 판옥선에서 각종 총통을 쏘아 원거리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힌 다음 근거리에서 소형총통과 궁시로 적을 제압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원리로 해전에서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수군전술

▲ 수군전술

그러면 당시 조선 수군의 전술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오붕근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 역사에서 수군 전술의 발전 형태는 전선과 무기체계의 발전 속도에 비례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화포가 개발되기 전인 고대의 해전수행 방법은 현측을 맞대고 승선하여 육박전을 벌이는 접현전(接舷戰)의 형태였다. 그러다가 화포가 개발된 고려시대 말부터는 화력타격전(火力打擊戰)을 배합한 해상기동전(海上機動戰)을 수행하였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화력기동전(火力機動戰)이 일반화되었다.


특히 판옥선과 귀선이 개발되고 다양한 화포가 전선에 장착된 임진왜란 중에는 수군 전술 또한 다양한 형태로 구사되었다. 조선 수군은 이러한 전술을 상황에 맞게 적용함으로써 대부분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정유재란 이전 조선 수군의 주요 해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전술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적 지휘선에 대한 집중 공격이다.
조선 수군의 전술 가운데 하나의 특징은 적 지휘선에 대한 집중공격이다. 공격의 목표를 적 대장선과 적장으로 정한 가운데, 선봉선으로 하여금 이 목표를 쓰러트려 적의 사기를 꺾어 놓고 총 공격을 감행하였다. 예컨대 1592년 6월 2일 당포해전의 경우, 가장 먼저 귀선으로 하여금 목표를 적 대장선으로 삼고 돌진하여 현자포 및 천자 지자포를 발사하여 적선을 깨트리고, 그 잔해에 남았던 왜장을 활로 쏘아 물에 떨어뜨렸다. 이렇게 하여 적의 대장선이 부서지고 적장도 전사하자 적들은 갈팡질팡하고 이틈에 조선 수군은 화력을 집중하여 남은 적을 소탕했던 것이다.

같은 해 6월 5일의 당항포해전에서도 돌격장이 탄 귀선으로 하여금 적의 대장선 밑에까지 돌진하게 하여 총통을 발사하여 적선을 깨트리니 적장은 활에 맞아 바다에 떨어졌다. 대장을 잃은 적선은 오합지졸이 되었고, 조선 수군은 이런 적선을 완전히 격침시켰다. 그리고 9월1일에 있었던 부산포해전에서는 초량목으로 나오는 적의 선봉 대선 4척을 먼저 쳐서 기선을 잡았다. 그 결과 일본군들은 갈팡질팡하고 조선 수군의 사기는 충천하여 적을 소탕할 수 있었다.

당시 포탄의 명중률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적선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전선은 귀선이었다. 귀선은 당시 일본군의 조총 사격에도 피해 없이 적선 가까이 가서 총통을 발사하였다. 그 결과 매우 훌륭한 전과를 거둘 수 있었다. 반면에 일본군은 조선 수군의 전선에 최대한 근접하여 등선백병전만으로 일관하였다. 따라서 화포발사가 없는 적선에 대하여 조선 수군의 전선에서는 적의 대장선 또는 선봉선에 근접하여 총통을 발사함으로써 전투에서 장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화포의 명중률 제고를 위한 진형을 형성하였다.
당시 조선 수군 전술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화포의 명중률 제고를 위한 진법 운용 또는 진형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화포의 명중률은 오늘날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화포의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상황에 부합한 진형을 형성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진형 형성은 당시 통용되던 『오위진법(五衛陣法)』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오위진법』에는 육전에서 사용되던 기본오행진을 비롯한 다양한 변환진이 수록되어 있다. 기본오행진은 직진(直陣)방진(方陣)원진(圓陣)곡진(曲陣)예진(銳陣)의 5가지가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기본오행진을 공격상황에 맞게 형성한 진형을 변환진이라고 부르는데, 당시 학익진(鶴翼陣)장사진(長蛇陣)언월진(偃月陣)어린진(魚鱗陣)조운진(鳥雲陣)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진형을 해상에서 적절하게 형성한 것이다.

진형의 형성이 해전 승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해전은 한산도해전이었다. 이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형성한 진형은 학익진이었다. 학 모양으로 형성된 지형에서 적 선단은 양 날개 가운데에 포위되어 조선 수군의 포격에 좋은 표적이 되었다. 아울러 귀선을 비롯한 돌격선은 적의 함대 진형을 교란시킴으로써 적 함대의 진로를 차단하는 한편 해상의 일정 지점에 탄착점을 형성시켰다. 이 때 조선 수군의 본진은 학익진을 형성하면서 돌격선의 역할에 의해 형성된 탄착점을 향하여 포를 발사함으로써 명중률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부산포해전의 경우는 양상이 달랐다. 종심이 깊은 포구인 부산포해전에서는 이순신의 전라좌수군 함대가 앞장서고 그 뒤를 전라우수군과 경상우수군 함대가 따랐는데 이때의 진형은 장사진이었다. 특히 부산포해전에서 선봉은 귀선이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 수군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진형을 형성하여 적을 공격함으로써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수군 지휘관의 병법에 대한 탁월한 식견이 바탕이 된 가운데 우수한 선재화포의 위력과 함께 조선 수군들이 부단한 훈련을 통해 이를 숙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