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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초기에 전투편제는 주로 『오위진법(五衛陣法)』『제승방략(制勝方略)』의 분군법을 활용하여 전투편제를 이루었다.
우선 오위진법에 대해 살펴보자.

조선 전기는 아직 화약병기가 전면적으로 활용되지 않은 시대이므로 진법이 중요하였다.
진법은 전투대형을 갖추는 법을 뜻한다. 곧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군사를 편제하고 훈련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또 조선 전기에는 “조종의 옛 강토를 조금도 줄일 수 없다.”는 기치 아래 북방 영토 개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 남방의 왜구보다는 북방의 여진족과의 충돌이 잦은 편이었다. 이런 조건에서 형성된 조선 전기의 전술은 오위진법이었다.

『오위진법』은 조선 전기 중앙군 조직인 오위의 부대 편성과 군사훈련법을 기술한 병서다.
진(陣)이란 전투대형으로 진법은 곧 전투대형을 갖추는 방법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군사를 편제하고 훈련시키는 기술을 일컫는다. 『오위진법』은 1451년(문종 1)에 처음 만들어진 이후 세조대에 두 차례 더 간행되었고, 1492년(성종 23)에 다시 개정, 간행되었다.

오위진법에서 군사조직의 기간을 이루는 것은 졸(卒)→오(伍)→대(隊)→려(旅)의 조직이었다. 여기서 려(旅)는 통(統)과 같으며, 통(統)→부(部)→위(衛)→대장(大將)으로 지휘체계가 올라간다. 이것은 최말단의 단위조직인 오는 군사 5인을 단위로 하는 조직인데, 5진법에 의한 편성 원칙에 따라 125인을 구성원으로 하는 려까지의 존재를 알 수 있다. 따라서 명령체계는 대장→위장→부장·유군장(遊軍將)으로 명령이 내려오고, 부장은 통장(統將)을, 유군장은 영장(領將)을, 통장·영장은 여수(旅帥)를 호령한다. 그리고 다시 여수(旅帥)→대정(隊正)→오장(伍長)→졸(卒) 순으로 명령을 내린다. 이러한 편성원칙은 중앙에서의 5부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각 지방의 군사조직인 유방(留防)체제에서도 그대로 통용된 것이다. 다음 〈표1〉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표1〉오위진법 상의 부대편성 단위표

〈표1〉오위진법 상의 부대편성 단위표
구분   伍長 隊正 旅帥 統將/領將 部將/遊軍將 衛將 大將
부대편성 단위  
元數 1 5 25 125 125(여와같음) 500

4통(步戰·步駐·騎戰·騎駐)

2,500

5부(전·후·좌·우·중)

12,500

5위(전·후·좌·우·중)


다음으로 제승방략제에 대해 살펴보자.
『제승방략』은 2권 1책이며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현존하는 『제승방략』은 1588년 3월에 이일(李鎰, 1538~1601)이 펴낸 것을 1670년에 함경북도 병마사 이선(李選)이 다시 간행한 책이다. 내용은 북방 야인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북방의 제승방략이다.

책의 구성은 크게 2개 부분[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과 권2에 걸쳐 「열진방어」가 실려 있다. 이어서 권2의 끝부분에 부록으로 들어 있는 「육진대분군」과 「삼읍분군」은 당시의 전투 편제를 밝힌 것으로 분군 규정과 해당 지휘관을 정해 놓았다.

이 부분이 바로 임진왜란 해전에서 사용한 수군의 전투 편제와 유사하다. 제승방략의 세부 전투 편성은 조선 초기 북방에서의 여진족 공격 시 정립되었다. 당시 조선에서는 오랑캐의 침입을 응징하기 위해 가끔 오랑캐의 본거지를 공격하였는데, 전방에서 대규모로 적을 공격할 때에는 6진대분군법에 의해서 6진의 토착 군사들을 총동원하여 절도사의 지휘 아래 5위 체제를 갖추었다. 그리고 후방에서 소규모로 적을 공격할 때에는 3고을분군법에 의하여 후방 3고을의 군사를 동원하여 3위 체제를 갖추었다.

『제승방략』에 의하면 각 위의 위장은 본진과 그 소속된 진보의 토착 군사를 선발하여 3분의 1은 각기 자기의 진보에서 성을 지키게 하고, 3분의 2를 5위와 유군(遊軍)·척후(斥候)에 소속시켜 군사를 편성하는데, 각기 자기 관하의 토착 군사로써 군사의 편제를 짜고 남는 숫자를 군사가 부족한 곳에 옮겨다 보충하였다. 아울러 후방부대는 한후장(捍後將)을 두어 후방의 방비를 맡겼다. 특수부대는 전방부대를 계속하여 후원하는 계원장(繼援將)과 돌격을 전담하는 돌격장(突擊將)을 두고 후방에서 군량미와 군사 장비를 수송하는 치중장(輜重將)을 두었다.

실제 조선 중기에는 오위진법의 편제와 제승방략의 분군법에 따른 전투편제를 혼합하여 조선 수군의 전투편성을 이루었다. 〈표2〉는 임진왜란 직전 전라좌수군의 전투편성이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위장·부장 등은 오위진법에 나오는 편제 명칭들이고, 한후장·참퇴장·돌격장 등은 제승방략의 분군법에 나타나는 용어들이다. 임진왜란 초기 조선 수군은 각도 수사 간의 협조체제였기에 주로 전라좌수군의 전투편제를 중심으로 작전을 수행하면서 사안에 따라 경상우수군과 전라우수군이 보완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표2〉 임진왜란 초기 조선수군의 전투 편제

〈표2〉 임진왜란 초기 조선수군의 전투 편제
전투 편제 직책 및 성명
중위장(中衛將)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
좌부장(左部將) 낙안군수 신호(申浩)
전부장(前部將) 흥양현감 배흥립(裵興立)
중부장(中部將) 광양현감 어영담(魚泳潭)
유군장(遊軍將) 발포가장 나대용(羅大用)
우부장(右部將) 보성군수 김득광(金得光)
후부장(後部將) 녹도만호 정운(鄭運)
좌척후장(左斥候將) 여도권관 김인영(金仁英)
우척후장(右斥候將) 사도첨사 김완(金浣)
한후장(捍後將) 본영 군관 최대성(崔大成)
참퇴장(斬退將) 본영 군관 배응록(裵應祿)
돌격장(突擊將) 본영 군관 이언량(李彦良)
선봉장(先鋒將) 경상우도 변장(邊將) 중

그러다가 1593년 8월부터는 삼도수군통제사 제도가 설치됨에 따라 각도 수군들이 고르게 포함된 가운데 전투 편성이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1594년 3월에 있었던 제2차 당항포해전에서는 오위진법과 제승방략제의 세분화된 모습을 〈표 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주목되는 것은 조방장(助防將)이 등장하고 있다. 조방장은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나 조전장(助戰將)으로도 일컬어졌는데, 칭호가 뜻하듯이 정규의 편제를 도와서 지원하는 것으로 다분히 임시적인 임무를 띠고 있었다. 조선 전기부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경상·전라 두 도에 동일한 명칭의 경장(京將, 서울에서 파견되는 장수로 순변사·방어사·도원수·조방장 등을 말한다)이 파견되고 있었다.

그것은 진관편제 상의 원래의 지휘관과 별도로 도순찰사 밑에 방어사와 함께 중앙으로부터 파견되었는데, 진관편제가 마비상태에 이르자 새로운 방어체제로서 등장한 제승방략의 분군에 일역을 맡고 있었다. 당초에는 중앙으로부터 파견되었으나 여러 가지 폐단으로 중앙으로부터의 파견이 제한되고, 본도에서 방어를 해결한다는 취지에서 내지의 수령을 변지의 조방장으로 삼는 대책이 강구되기도 하였다. 그것은 내진(來鎭) 군사의 변빈(邊鎭) 분방·합방과 상호 관련되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조방장은 전라좌수군의 변장 중에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표 3〉제2차 당항포해전 시의 전투 편제

〈표 3〉제2차 당항포해전 시의 전투 편제
전투 편제 직 책 / 성 명 소속
조방장(助防將) 절충장군 어영담(魚泳潭)  
우척후장(右斥候將) 여도만호 김인영(金仁英) 전라좌수군
우척후일령장(右斥候 一領將) 사복 윤붕(尹鵬)
좌위좌부장(左衛 左部將) 녹도만호 송여종(宋汝悰)
우돌격장(右突擊將) 훈련주부 이언량(李彦良)
좌척후장(左斥候將) 사도첨사 김완(金浣)
좌별도장(左別都將) 전 첨사 배경남(裵慶男)
훈련판관 이설(李渫)
좌부 보전통장(左部 步戰統將) 훈련봉사 최도전(崔道傳)
좌척후 일령장(左斥候 一領將) 정병보 노천기(盧天紀)
좌척후 이령장(左斥候 二領將) 정병보 조장우(曹將宇)
계원장(繼援將) 수군우후 이정충(李廷忠) 전라우수군  
전부장(前部將) 해남현감 위대기(魏大器)
좌응양장(左鷹揚將) 어란포만호 정담수(鄭聃壽)
우응양장(右鷹揚將) 남도포만호 강응표(姜應彪)
중위 좌부장(中衛 左部將) 금갑도만호 이정표(李廷彪)
좌위 좌부장(左衛 左部將) 목포만호 전희광(田希光)
우위 중부장(右衛 中部將) 강진현감 유해(柳瀣)
우부장(右部將) 주부 김남준(金南俊)
우척후 일령장(右斥候 一領將) 겸사복 윤붕(尹鵬)
우응양 조전장(右鷹揚 助戰將) 충순위 배윤(裵胤)
중위좌부보주통장(中衛左部 步駐統將) 정병보 곽호신(郭好信)
좌척후일선봉장(左斥候一先鋒將) 사천현감 기직남(奇直男) 경상우수군  
좌돌격장(左突擊將) 고성현령 조응도(趙凝道)
좌척후선봉도장(左斥候先鋒都將) 웅천현감 이운룡(李雲龍)
유격장(遊擊將) 하동현감 성천유(成天裕)
우부장(右部將) 당포만호 하종해(河宗海)
좌선봉장(左先鋒將) 소비포권관 이영남(李英男)
우돌격도장(右突擊都將) 사량만호 이여념(李汝恬)
전부장(前部將) 거제현령 안위(安衛)
우유격장(右遊擊將) 진해현감 정항(鄭沆)

조방장 외에 기타 전투 편제의 명칭들은 오위진법의 통장 단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제승방략제에 의한 전투편제와 오위진법의 전투편제가 함께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수군의 전투 편성은 출전 시 구성되어 실제 전투에서 편성된 직책에 따라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