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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沙船)

사선

▲ 소조

중국의 대표적인 고선(古船)은 사선복선광선조선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선형과 지방에 따라 분류된 이른바 중국 사대선형이다. 복선은 복건성 지방에서 발달한 첨저형 선이고, 광선은 광동지방에서 발달한 첨저형 선이며, 조선은 명청대에 절강 복건 광동 등의 해역에서 사용된 일종의 소형쾌속선이다. 그리고 사선은 본래 강소와 절강지방에서 발달하여 양자강 이북의 북양에서 널리 쓰인 평저선이다.

사선은 당대에 강소지방 숭명도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송대에는 방사평저선으로, 원대에는 평저선으로 불리다가 명나라 가정(嘉靖:1522~1566) 초년부터 사선이라 불리고 청나라 도광(道光:1821~1850)년대까지도 해운조선으로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사선의 특징은 밑이 평탄하며 돛대의 수가 많고, 선수부와 선미부가 예리하지 못하고 네모진 방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선미재 후방으로 갑판이 연장되고 그 위에 선실이 꾸며져 있는데, 그림과 같이 사선의 모양은 현대의 중국 목범선(木帆船)과도 공통되는 것으로, 가히 중국 장크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사선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천을 겪어왔다. 우선 그 용도로 볼 때, 당대(唐代)에는 조운선으로 개발되었으나, 송대로부터 명대에 걸쳐서는 군선으로 각광을 받고 청대 이후에는 다시 조운선 또는 상선으로 변하여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사선의 크기는 명대의 것을 기준으로 할 때 대형 중형 소형 등이 있었다. 그 중 대형 사선은 1500석을 실을 만하고, 길이 100척, 너비 18척이다. 중형과 소형 사선의 척도는 대형 사선의 0.7배, 0.5배 또는 0.3배 등으로 길이가 70척, 50척, 30척 등이다.

돛대는 2개로부터 5개까지가 보통이지만 1개를 가진 것도 있었다. 주범주의 높이는 배 길이의 0.7배 정도였다. 돛은 초기에는 대껍질로 만든 멸범(篾帆)이었으나, 명대에 포범(布帆)이 등장하고 청대에 이르러서는 거의 포범만이 사용되었다.

노는 배가 크고 작음에 따라 한쪽에 2정 내지 8정을 두었다. 이것은 배의 운항구역에 따라 결정되었을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대형선은 돛만을 사용하고 소형일수록 노를 많이 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임진왜란 때 내원한 사선은 과연 어떤 크기의 배였을까. 그것은 함께 들어온 다른 중국의 군선인 팔라호선이나 조선과 일본의 군선들과도 비교해서 추정해야 할 것이지만, 한국 남해안의 지리적 조건을 고려할 때 대형사선은 아니고 길이 50~70척 정도의 중형사선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팔라호선(叭喇唬船)

무지비의 파라호선

▲ 무지비의 파라호선

호선 또는 팔라호선은 명청시대에 절강과 복건 지방에서 사용된 비교적 작은 군선이다. 《무비지(武備志)》에는 그림과 함께 설명문이 붙어있다.

이와 같은 호선은 배 밑에 용골을 둔 소형 첨저선이다. 복건 지방에서도 사용되어 소형 복선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백조(白艚)에 속한다. 그 크기는 길이가 겨우 40척, 너비가 10척이다. 복선이 몹시 커서 성과 같고 사람의 힘으로는 움직이기 힘들고 오직 바람에 의해서만 운항할 수 있는 불편이 있는데 반하여, 호선은 노를 써서 간편하게 배를 조종할 수 있도록 만든 배이다. 그 배는 매우 속력이 빨라서 연해를 초탐하고 적선을 추포(追捕)하기도 편리하므로 16세기에 명의 명장 척계광(戚繼光)이 왜구를 토벌하는 데도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임진왜란 때 해전의 전장이 된 한국 남해안은 내해와도 같고 비좁고 지리도 복잡한 지세이므로 명나라가 호선과 같은 경쾌한 범노선을 파송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참고로 청대의 호선은 내해용과 외해용의 구별을 두고, 외해용 대형호선은 길이 80척, 너비 15척, 깊이 약 7척에 달했다.


무기

삼안총 호준포

▲ 삼안총, 호준포

명나라의 무기체계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당시 몇 가지의 기록을 통해 보면 불랑기와 호준포, 그리고 삼안총 등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이순신의 기록에 나오는 호준포와 불랑기에 대하여 간단하게 살펴본다.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호준포는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에 명나라로부터 도입한 화기였다. 운영하기에 편리하도록 무게를 가볍게 하였고, 외부에 죽절을 두어 포신의 과열을 예방하였다. 포신이 뒤로 튕겨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철로 만든 다리 두 개를 부착하여 지상에 고정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마치 호랑이가 앉아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호준포라고 불렀다.

당시 명나라가 평양성 탈환 전투에서 이 호준포를 사용하여 큰 효과를 보았다는 것을 알고, 이를 모방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야전에서 많이 사용되었으며, 좁은 공간에서도 운영이 편리하여 노량해전시에 전함에 탑재, 사용하였다.

불랑기는 원래 15세기 경부터 프랑스에서 제조된 후장식 화포였다. 포탄 재장전과 사격에 소요되는 시간이 매우 짧은 것이 특징이다. 불랑기포는 크기에 따라 1호부터 5호까지 다섯 종류가 있으며, 각기 제원을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불량기의 종류와 제원
종류 약선 화약량 토격 피사체
불량기 1호 중약선 반올 13냥 1치5푼 납탄알 1개
불량기 2호 중약선 반올 7냥 1치5푼 납탄알 1개
불량기 3호 중약선 반올 4냥 5돈 8푼 납탄알 1개
불량기 4호 중약선 반올 3냥 7푼 납탄알 1개
불량기 5호 중약선 반올 2냥 5푼 납탄알 1개

불랑기 4호

▲ 불랑기 4호

불랑기는 중종 12년(1517) 유럽 상선이 중국 남쪽의 광동(廣東)에 와서 처음으로 명나라에 전하여졌다. 명나라에서는 이를 불랑기라는 이름으로 모방 제조하여 실전에 사용하였다. 조선에서는 선조 26년(1593) 1월 평양성 전투에서 명나라 군사들이 이를 사용하면서 알려졌다.

불랑기포의 효능에 대해서는 선조 30년(1597) 2월에 영의정 유성룡이 올린 장계에 잘 나타나 있다.

독성(禿城)이 파사산성(婆娑山城)보다 나은 편이고, 진중의 포수(砲手)로 하여금 대포구멍에서 불랑기를 쏘게 하고, 성 밖의 먼 곳에 방패를 세워 맞히는 것을 보게 한즉, 잘 맞추는 자는 없었으나, 그 중 3인은 명중시키고, 1인은 한 번에 탄환 2개를 쏘아 모두 방패를 맞추어 관통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불랑기는 정유재란 때 이미 성을 방어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불랑기를 해전에서 사용하였다는 기록은 없었으나, 1994년 전라남도 여천시 백도 근해에서 자포 1개를 인양하였다. 이로써 불랑기가 해전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인양된 불랑기 자포의 유물 속에는 격목이 박혀 있었다. 격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화약을 다져서 사용하는 목전(木箭)을 쏘거나, 탄알(납탄알)을 최대 3개까지 쏘았던 듯하다.

불랑기의 운용은 다른 포와 달리 후미 장전식으로, 자포(子砲, 오늘날 화기의 탄창)에 화약과 탄환을 넣은 후 후미에 끼워 발사하였다. 따라서 자포를 연속적으로 바꾸어 끼울 수 있어 빠르게 사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