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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마이클 루시 美 해군대령 흉상 제막식 거행

앨범형 게시판

2017-12-08 09:39: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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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훈공보실 조회수 533

6․25전쟁 중 한국 해군․해병대 발전에 기여한 故 마이클 루시 美 해군대령 흉상 제막식 거행
- 6․25전쟁 기간 중 한국해군 군사고문단장으로서 X-RAY 작전 등 주요작전 기여
- 전투함 무상양도․해병대 보급품 개선 등 한국 해군․해병대 발전에 큰 공헌

- 해군은 12월 7일 오전 11시 경남 창원시 해군사관학교 학술정보원에서 6․25전쟁 중
유엔군 예하 한국 해군으로 구성된 기동전대사령관(CTG 95.7) 겸 한국 해군의 군사고문단장으로서 한국 해군ㆍ해병대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미국 해군의 故 마이클 루시(Michael Joseph Luosey, 1912. 8.15. ~ 1998. 6.29.) 대령의 흉상 제막식을 거행한다.

- 정안호(소장) 해군사관학교장 주관으로 열리는 이날 행사에는 진해 지역 해군 주요
지휘관, 브래드 쿠퍼(Brad Cooper, 준장) 주한미해군사령관을 비롯한 한ㆍ미 양국 해군장병 100여명이 참석해 한국 해군의 발전과 한ㆍ미 동맹에 기여한 루시 대령을 업적을 기린다.

- 1912년 8월 15일 미국 메인주 뱅거(Bangor)에서 태어난 루시 대령은 1933년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소위로 임관했으며 태평양전쟁 중 미국 해군의 최연소 구축함 함장으로서 주요 전투에서 전공을 쌓았다.

- 루시 대령이 한국 해군과 인연을 맺은 것은 6․25전쟁 직후 유엔군 예하에 한국 해군으로 구성된 기동전대사령관 및 한국 해군의 군사고문단장으로 임명되면서 부터이다.

- 미국 해군은 적군에 대한 정보수집 및 연해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부대로서 한국 해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한국 해군참모총장인 손원일 제독이 전투함 구매를 위해 미국 출장 중인 상황이어서 루시 대령을 한국으로 파견했다.

- 1950년 7월 9일 중위 1명 및 사병 5명과 함께 항공편으로 부산에 도착한 루시 대령은 1952년 5월 31일까지 한국 해군 기동전대사령관과 군사고문단장을 겸직했는데 실제 작전은 한국 해군참모총장인 손원일 제독이 지휘했고, 루시 대령은 군사고문단장으로서 한국 해군을 지원하고 유엔군사령부의 지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 루시 대령은 부임 직후 38도선 이남 연안에서 북한군의 해상보급을 차단하는 한국 해군의 해상작전과 해병대 작전을 도우며 한국 해군과 신뢰를 쌓아가는 한편 개전 초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유엔군 함정들에 대한 군수지원, 지상군과의 연락 체계 구축 등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 특히 그해 8월 중순 포항에서 국군 3사단이 북한군에게 포위되어 해상으로 철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루시 대령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 정부가 민간에 양도한 상륙함(LST) 4척을 어렵게 모아 해상철수작전을 도왔다. 당시 국군 3사단 함포지원을 지휘한 미 해군 제3순양함분대은 상륙함 전력이 제때 도착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해 포경선이 예인하는 뗏목에 한국군 병력을 태워 근해에서 전투함으로 철수하는 계획을 수립할 만큼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 루시 대령이 모아 온 상륙함 4척은 8월 16일 포항 독석리 해안에 도착해 국군 3사단 병력 9000여명, 경찰 1200여명, 민간인 노무자 1000명, 차량 100여대를 무사히 철수시켰다.

- 전쟁 중 루시 대령의 가장 큰 공적은 6․25 무엇보다도 한국 해군과 해병대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그는 전쟁기간 중 한국 해군의 염원이었던 2300톤급 호위함(PF), 어뢰정(PT), 구잠함(PC), 구잠정(PCS) 등의 전투함과 장비를 미국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양도받는데 기여했다. 6․25전쟁 발발 당시 한국 해군이 보유한 함정은 미국에서 구매한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 (PC-701, 173톤급) 등 전투함 4척, 경비정 1척, 소해정 25척 등 소형함정 36척에 불과했으나 전쟁기간 중 호위함을 비롯해 30척이 추가로 도입됐다.

- 또한 루시 대령은 인천상륙작전 직전 실시한 한국 해군이 시행한 첩보수집작전 X-RAY 작전에 관여했고,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는 한국 해병대에 병기는 물론 속옷ㆍ양말까지 모든 보급품을 미국 해병대와 똑같이 지급해 달라는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후 모든 한국 해병대가 양질의 보급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외에도 전쟁기간 중 한국 해군사관생도들을 연락장교 직책으로 미국 해군의 전투함에 편승시켜 함정운용술ㆍ전술 등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생도들이 3년간 정상교육을 마칠 수 있도록 조치해 한국 해군의 인재양성에 기여했다.

- 이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는 전쟁기간 중 루시 대령에게 최고의 영예인 태극무공훈장과 공로훈장을 수여했으며, 미국 정부로부터도 금성훈장 등 많은 훈장을 받았다. 1952년 5월 31일 임기를 마치고 한국을 떠난 루시 대령은 군수지원함 함장, 구축함전대장, 해상수송지원단장을 역임하고 1960년 전역했다. 미국 해군은 그에게 장성으로 명예진급해 전역하는 것을 제안했지만 ‘그 계급으로 실무에서 일할 수 없다면 진급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전역 이후에는 고향에서 공직에 종사했고 미국 적십자회장을 역임했다.

- 한편 한ㆍ미 동맹과 한국 해군 발전에 기여한 루시 대령의 흉상은 흉상 85cm, 좌대 85cm미터 크기이며, 해군사관학교 학술정보원(도서관) 1층 로비에 세워져 해군사관생도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끝//